Apr 26, 2010

내 인생을 상장하라 - 후지타 스스무

SHIBUYADE HATARAKU SHYACHONO KOKUHAKU by Susumu Fujita

후지타스스무 - 정창열 / 이가서




'난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동경으로 온 게 아닌가!'
먼지를 뒤집어쓴 기타를 다시 꺼내는 기분으로 난 대답했다.
'장래의 꿈은 회사를 만드는 겁니다.'



양복을 입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앞으로 창간될 잡지의 광고를 따낸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었다.
영업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나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덮어놓고 경험만 쌓았다.
발이 부르트도록 새로운 영업처를 찾아다녔기 때문에 내 명함은 아주 빠른 속도로 줄었다.
그래도 난 그동안 아르바이트생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에 몰두 했다.
무더운 여름철에 매일 밖에서 100군데 이상을 돌아다녔다.


졸업 그리고 인텔리전스 입사후..
난 온 힘을 다해 일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아침 이른 시간이나 토, 일요일에 일이 없으면 찾아서라도 했다. 그리고 누가 무슨일을 맡기든 거부하지 않았다. 당연히 업무량이 점점 많아졌다. 실적을 많이 올렸고, 또 일이 늘어 나는 업무 스케줄로 1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옥스플래닝 와타나베전무님의 해임후..

'저하고 나카야마하고 셋이서 회사를 만들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게 강한 의지로 전무님을 만나러 온 건 아니었다. 그런데 왠지 난 열의에 가득 차 전무님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렇다! 회사를 만들려면 지금 직장을 그만둬야지!'

우노사장과 협의후.. 와타나베전무는 새회사에서 빠지고, 후지타는 사장이 된다.

우노사장이 50%출자하는 조건으로 회사는 설립..

나카야마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지금 저는 큰 클라이언트를 갖고 있습니다. 그 고객은 옥스가 아닌 저 나카야마 개인을 믿고 거래를 해주겠다고 합니다. 자본금은 이 회사에서 얻어진 이익금으로 염출할 수 있습니다.'

// 큰 클라이언트를 내것으로 하면 창업자본을 충당하고 동시에 고객을갖고 창업할 수 있다.

곧이어 우노 사장이 말했다.
'그건 아니죠. 지금의 회사에서 얻은 고객은 회사의 자산이지요. 지금의 회사에서 확실하게 다른 사람에게 인계를 해줘야 해요.'

// 직전 회사에 도의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큰 기업을 만들 수 없다.

'사업을 어느 분야로 할 생각인가?'
난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난 창업을 결심한 후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사업 계획이나 돈도 없고, 사람도 떠나가고, 인맥도 없었다. 다시말해 그때 인텔리전스에서 출자받기로 결정된 것 외에 완전히 제로 상태였다. 하지만 나에겐 전진만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그 외의 일에는 흥미가 없었다.

'영업 활동을 통해 유망한 사업을 찾아내 그것을 크게 키워보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사업 계획을 보고 간부회의에서 투자를 결의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회사로 돌아와 점심까지 먹었지만 모두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자 일합시다.'
난 즉시 수화기를 손에 들고 인터넷 쇼쇼핑몰 회사를 검색해 본 후 닥치는데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처음에 우리는 인터넷 영업 전문 회사라고 선전했다. 당시 기술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 수준은 바닥이었다.
// 기술이 뛰어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


일주일에 110시간, 한달에 44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었다. 시급으로 바꾸면 사장인 나도 지방의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이 받는 페이와 비슷했다.
110시간 근무는 9시에 출근해서 새벽2시까지 일을 하는 것이며 그것을 평일 5일 동안 하고 토, 일요일은 12시간씩 일하면 110시간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를 시작한지 5개월.. 첫 정직원1호 이시카와가 들어오게 되었다.
몇년 지나서 입사한 사원들 중에는 '더 초기에 사이버에이전트에 들어와 보고 싶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들어와서 일하고 싶은 그런 회사가 아니었다.

// 회사를 무에서부터 만들어낸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21세기를 대표하는 기업을 만든다' 는 꿈에 또 한걸음 다가선 느낌이었다.

// 나도 꼭 만든다!

'벤처기업의 일기'라는 타이틀을 붙인 이 코너는 지금도 사이버에이전트 홈페이지의 <CEO 메시지 코너> 에서 열람할 수 있다.

// 나도 꼭 쓴다!

다카무라는 아침에 앉아있던 그 자세로 소파에 앉아 곤혹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거야 나 원..., 여긴 벤처기업이니 지시를 기다리지 말고 알아서 움직여야죠.'

'후지타, 통장에 이제 20만엔 밖에 안남았어.'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데 왜그러지?'
그때 난 우노 사장에게 받은 충고를 떠올렸다.
'사장이 나가는 돈에만 신경 쓰고 있어도 회사가 망할 일은 없다네.'

'우리 회사에서 독자적으로 클릭보증형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근데, 시스템은 만들 수 있습니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세가와 씨가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했거든요. 그렇죠? 하세가와 씨.'
'네.. 그냥...'
'우리에겐 첫 상품이니 정신 바짝 차려서 잘 해 봅시다.'

// 기술적 문제보다.. 하느냐 안하느냐의 결단력과 행동력의 유무가 차이를 만든다.

'이번에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내용은 밸류클릭과 같습니다만 오픈 기념으로 다소 가격이 싸며 일본에서 만든 상품입니다.'
'그래요? 사이버에이전트에서 하는 거라면 우리도 신청하겠습니다.'

밸류클릭으로부터 전화..
'사장님 회사는 우리 회사의 큰 대리점인데 어째서 그런일을 하시는 겁니까?'
'대리점으로는 돈 벌기가 힘들어서 말입니다.'
'사이버클릭을 중지하는 조건으로 20% 어떻습니까?'
'죄송합니다. 이미 신상품을 개발해 놓은 터라.'
난 마음을 냉정하게 먹고 말했다. 도의적으로 따진다면 대리점을 하고 있던 서비스를 완전히 모방해서 자기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있으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필사적이었다.

// 과감한 결단.. 내리쳐라!

결국 시스템 개발 외주처를 찾기 시작했다. ~ 그 회사는 주식회사 온 더 엣지 (현 라이브도어) 사였다.

NHN, 일 포털 '라이브도어' 인수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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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2일 ... NHN은 일본의 검색 포털인 LDH의 라이브도어를 인수했다고 12일 밝혔다. NHN은 최근 라이브도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뒤 LDH 측과 협상을 벌여 ...

사이버클릭 이전에 했던 영업대행도 순조로웠다. 그러나 사이버클릭에 사업을 집중시킬 결심을 했기에 다른 사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외에 몇가지 진행되고 있던 제휴건도 거절했다. 당시로서는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나에게는 '회사가 작을때는 여러가지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확신에 가까운 신념이 있었다.
예를 들어 횟집골목은 회를 특화해서 팔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맛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인터큐(현 GMO) 구마야 마사토시 사장의 출자 제안에..
그렇지 않아도 자금 조달에 힘들던 시기였다. 난 저절로 군침이 넘어갔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싶어도 참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노 : '이건 조언으로 들어주었으면 하네만, 매력 있는 여자는 좀처럼 몸을 허락하지 않는 법이지, 그래서 매력 있는 여자로 보이는 거라네. 좋은 회사로 만들 생각을 갖고 있다면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네.'

// 안달하지 말자.. 조급해 하지말자.. 좋은회사는 천천히 단기자금문제에 흔들리는 짓을 하지 않는다.

승기를 잡으면 그것을 뺏기지 않는 방법을 나름대로 갖고 있었습니다. 승기를 놓치는 건 아주 작은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승기를 잡았을 때 맹공격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카야마가 오다.

'침낭? 왜요?'
'그게 저, 벤처기업에서 일하게 돼서요.'

// 이정도 각오는 되야 무를 자르지..

'지금 당장 MBA는 휴학을 하시고, 박보당에서 나와 우리 회사로 오십시오!'
나 자신도 막무가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년 봄엔 우리 회사도 상장 시킬 겁니다.'
상장, 난 회사를 시작한지 3개월째 되어 아직 사원이 한명도 없고, 사업 내용조차 정하지 않은 시기에 '2년 후에는 상장을 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깊이 생각하고 말한건 아니었다. 내입으로 약속한 2년 후에 상장시키겠다는 말은 공약으로 굳혀졌고 점점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역시 사이버에이전트는 강도 높게 일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1년 내내 24시간 누군가가 사내에서 일했다. 회사에서 자는 사람도 항상 10명은 넘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 투자한 우노 사장님은 비지니스로서가 아니라 저라는 인간에게 투자를 했습니다.'

'그럼 상장되는 날에 맞춰서 책을 한번 내볼까요?' 그래서 출간된 책이 '재패니즈 드림'이다.


2000년 3월24일 우리회사가 1998년 3월 18일에 설립되었으니 정확히 2년이 지나고 있었다.
시가총액으로 850억엔, 조달금액은 225억 엔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회사를 시작한지 불과2년...

225억엔을 모았으니 이율 10%로 잡아서 최소한 22억5천만엔 정도는 이익을 내줬으면 좋겠네요.
난 상장 후 빨리 회사를 확대시켜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그 때 비로소 깨달았다. 아무튼 매출을 더 올리는 일과 고수익을 내는 사업을 하는 일, 이 두가지가 나의 당면과제였다.

외자계 금융권에서 근무하면서 파격적인 연봉을 받았던 사람을 당시 회사의 최고 연봉으로 채용했을 때는 '연봉을 이정도 주는데 아마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고, 225억 엔의 재무적인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는 생각에서 채용을 했다. 그가 출근한 첫날이었다.
'사장님, 전 무슨일을 하면 될까요?'
'아, 저 ... 재무부서와 상의해주세요.'
결국 그 직원은 한달도 못돼서 퇴사했다.

상장직후 인터넷버블의 붕괴로 사이버에이전트의 주주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어느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비난은 상상을 초월했다.

내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눈물이 글썽거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 28살 여름의 끝자락. 난 내가 가야 할 곳을 잃었다. 난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었다. 난 이를 우두둑 갈면서 길에 떨어진 광고지를 발길로 걷어차며 일부러 가슴을 활짝 펴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미키다니 사장님 이번 이사분기 결산은 힘들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흑자를 내보려고는 하는데...'
'됐어요 그런거, 더 멀리 내다보고 경영하는 거 아닌가요?'
신념을 밀고 나가라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디 한번 해볼테면 해보라는 경영자로서의 배짱을 당시에는 갖고 있지 못했다.

// 나한테는 이런류의 배짱은 있다.

'21세기를 대표하는 기업'을 만드는 그날까지 계속 달려야만 한다.
28살때 포기 상황까지 갔던 그 경험은 지금 나의 최고의 재산이 되어 있다.'

// 나도 하자. 그냥 하면 된다. 단지 안해서 못하고 있을 뿐이다.



1 comment:

  1. 오늘의 나는 티켓위에 몸담고 있지만, 나의 열정들은 어떤 위치에 있나? 10년후 이 덧글을 보고 후회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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