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9, 2009

호암 이병철.. 위대한 멘토


 


步步是道場




이것이 인생이다. 언제 어디서 들은 말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가끔 이 말을 되새겨본다.

사람은 늙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닦고 스스로를 닦아나가기를 멎을 때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기적인 사업에 있어서는 신용이 제일이다. 신용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리고 한번 얻은 신용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을 더욱 어렵고 또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신용처럼 잃기 쉬운 것도 없다. 신용이란 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나 다름없다. 그런 신뢰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1976. 6. '재계회고' (서울경제신문)에서


자연은 속일 수가 없다. 동물이나 식물은 사람과 달라서 속일 수가 없다. 이론과 실제를 알고 항상 연구하고 개선해야지 자만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일본 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가서 배우도록 하자. 우리는 실패율을 낮추고 더 빨리 성장해야 한다.










호암선생은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이면서도 대단히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따스했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같이 경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나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매우 친절한 분이셨다. 나중에 한국 사람들이 호암선생을 매우 어려워한다는 걸 알고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철저해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마음이 섬세한 분인데, 사업가로서의 호암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도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경영을 간단히 말하자면 돈벌이로 생각한다.
그러나 호암은 물질에 대한 욕망을 이미 뛰어넘은 대단한 사업가였다.


호암선생은 만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그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었다. 한국의 독특한 시대적 상황이 호암선생을 애국자로 만든 것도 있겠지만, 호암선생의 경영철학에는 분명 남다른 점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경영을 간단히 말하자면 돈벌이로 생각한다. 호암선생도 물론 그런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호암은 물질에 대한 욕망을 이미 뛰어넘은 대단한 사업가였다.

나는 사업가에도 일류와 이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류 사업가가 되자면 사적인 탐욕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호암은 일류 사업가였다.

언젠가 호암은 사석에서 "경영이란 기본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국가의 경계마저 뛰어넘어 인류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세계적인 신문사의 소유주로서 항상 인류에 공헌하는 바른 언론을 위해 노력해왔고, 세계의 유수한 기업체를 이끄는 경영자들을 두루 만나보았지만, 호암처럼 인류번영에의 확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보지 못했다.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호암선생의 정신만큼은
세계를 아우르고도 남지 않았나 싶다.


인간이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러나 권력이든 돈이든 집착을 떨쳐버린다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호암선생은 사유재산은 신성한 위탁물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신념대로 평생 모았던 재산을 헌납하여 삼성문화재단을 만들었고, 귀중하게 아끼던 소장품들도 기꺼이 전국민을 위해 내놓았다.

일류 사업가다운, 거물다운 자세이다.

최근 다시 한국을 방문하여 삼성 사업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사업장의 규모와 시설이 생각 이상이었다. 자본주의 종주국에 전혀 손색이 없는 쾌적한 사업장을 둘러보면서, 미래지향적이었던 세계적인 사업가, 호암선생의 체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호암선생의 정신만큼은 세계를 아우르고도 남지 않았나 싶다.






호암선생이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 사를 방문했을 때 처음 만났는데, 그 주변을 오로라가 감싸고 있다고 할까,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미국인들은 대개 목소리가 큰 편인데, 목소리 큰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호암 선생은 끝까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호암선생의 말을 듣기 위해 집중해야만 했다. 오로라가 감싸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우리들 모두 호암선생의 나지막한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그때 나는 호암선생에게 마력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호암은 대단한 의욕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내가 호암선생을 만난 것은 이미 그가 노년에 접어든 이후였는데, 그때도 그는 젊은이보다 더한 진취적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합작 문제로 호암선생을 몇 번 만나는 동안, 나는 그와 내가 여러 가지 면에서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네 가지가, 책임감과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능력 그리고 올바른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호암선생은 그 네 가지를 고루 갖추 경영자였다. 특히 인재제일주의에 관해서는 호암선생에게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호암선생이 언젠가 자신은 로봇이 아니라 인재를 통해 경영 합리화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동서양의 문화가 달라도 좋은 인재를 발굴하고 그들을 가족같이 생각하며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같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호암선생의 경영 스타일을 들자면 대단한 성실성과 기술 개발에 대한 놀라운 관심도 빠뜨릴 수 없다. 호암선생을 보고 나서 기적이라 불리우는 한국 경제의 놀라운 성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호암은 대단한 의욕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젊어서 진취적이기는 쉬운 일이지만, 내가 호암선생을 만난 것은 이미 그가 노년에 접어든 이후였는데, 그때도 그는 젊은이보다 더한 진취적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호암선생은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거기에는 선진국의 기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도 합작문제로 서울에서 호암선생을 만났다. 주로 두 기업의 미래와 합작 가능성에 대해 얘기했는데, 호암선생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낮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안색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호암선생에게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는데, 호암선생 역시 자신의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모습이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해왔던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참 아름다웠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대가의 자세가 아닌가 잠시 숙연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진짜 경영자라면 호암선생처럼 최후의 순간까지 경영의 일선에서 자신의 마지막 생명까지 불태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었다.


-출처 호암기념사이트 http://hoamprize.samsungfounda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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